디펜스
나는 한 가지 작은 취미를 가지고 있다. 어떤 대상에 대해 그것의 정반대의 행동을 하는 거울 속의 대상을 상상해 보는 것이다.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에서 우로보로스(Ouroboros)라는 거대한 뱀이 자신의 꼬리를 삼키는 그림을 보았다. 기이한 분위기가 나는 그림이었기에 잠시 스크롤을 멈춰 바라보고 있었는데, 문득 재생 중인 비디오테이프가 거꾸로 감기듯, 우로보로스가 자신의 꼬리를 뱉어내는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리게 되었다. 자신이 삼킨 꼬리를 모두 게워낸 우로보로스는, 뒤이어 자신의 꼬리가 새로운 머리를 만드는 모습을 바라보고, 새로운 머리는 다시 새로운 꼬리를 뱉어내고, 새로운 꼬리는 다시 새로운 머리를 만드는... 그렇게 거울 세계의 우로보로스는 스스로를 영원히 반복적으로 생산하는 형태를 지니게 되었다.
컴퓨터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우리가 흔히 바이러스라고 부르는 프로그램이나 콰인(quine) 프로그램이 거울 세계의 우로보로스와 행동을 공유한다는 점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거울 세계의 우로보로스는 재귀 구조 프로그램의 동작을 수행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스스로의 존재 목적이 곧 스스로의 생산이 되어버리는 재귀 구조 프로그램의 동작을 두고, 누군가는 무한한 가능성을 파악하여 파서(parser)와 같은 훌륭한 응용을 떠올렸겠지만, 나는 이를 '편집증에 빠진 프로그램'이라고 표현하는데 조금 더 재미를 느낀다. 나는 재귀 구조가 극도로 방어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끊임없이 반복하는 자기 생산의 규칙을 매번 엄밀하게 검증하여 수행해야 함과 동시에, 스스로의 존재 소멸을 제외하고 재귀 과정에서 가능한 양태는 오직 자신의 논리 구조의 전개 이외로는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재귀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군집의 형태를 가진다는 점이다. 끝없이 높은 탑을 쌓아 올라가거나, 해안가의 안개처럼 흩어지거나. 진행 방향이 어디든 간에 그것의 가능성이 차례로 전개될수록 군집의 형태로 메모리에 저장되어, 종료 조건에 도달하기 전까지 장치가 반복하여 동작을 수행하게 된다. 군집은 양면의 성질을 가진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전개하는 논리적인 가능성의 표현임과 동시에, 물성을 지닌 무더기의 형상으로 세계에 드러난다. 재귀의 군집성은 자신을 호출한 대상에게 논리적으로 계산된 가능성의 결과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유용하나, 그것이 생성되는 형태, 즉 모든 가능성의 무더기는 대상으로 하여금 세부적인 전개 과정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 자기방어에 뒤이어, 편집증의 또 다른 성질이 이로부터 드러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해소되지 않는 의심과 불안으로, 이는 재귀 자체가 아니라 재귀 구조의 방어성을 자신의 곁에 두고 지녀야만 하는 사용자 측면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자기 불안과 의심의 논리적인 설명 구조를 반복하여 스스로를 반복 강화하는 흐름을 가진다는 점에서 편집증이 재귀 구조를 가진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편집증은 종종 구체적인 행동 형태를 동반하는 듯하다. 가령 자신을 도청한다는 믿음으로 온 집안을 알루미늄 호일로 감싸거나, 우주적 신호가 끊임없이 소음을 만든다는 인식으로 신디사이저 무더기를 만들어 귓속의 소음을 상쇄하기 위해 노브를 끊임없이 돌리는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겠다. 하지만 대부분 이러한 시도는 도리어 자기 확신을 강화하여 재귀 구조를 끊어내지 못하게 하며, 과도한 자기 논리의 계산과 그로부터 파생된 과다한 가능성의 무더기 속에서 대상은 신경쇠약에 이르게 된다. 오히려 대상 자신의 처절한 믿음을 방어하기 위해 생산한 모든 물질적인 표현이 - 난공불락의 요새를 만들기 위한 강박적인 시도들은 태생적으로 실패하여 존재 의미를 잃은 잉여물이 되거나, 자신을 공격하는 외부의 대상이 있다는 믿음, 즉 그것이 가상이든 아니든, 자신을 공격하는 존재가 물질로써 구현된 형태, 곧 자기 확신에 기반한 재귀적인 논리 구조가 전개되며 생성된 무더기가 마침내 활력을 얻어, 세계 이면에서 대상을 응시하던 공포의 형상이 지면 위로 드러난다. 결국, 방어를 위한 대상의 시도는 도리어 공격자를 세계로 이끌어내는 제의로 승화되고, 대상의 편집증적 논리의 반환값은, 공격자의 파편화된 신성을 집적하여 거대한 무더기로 현현한 그 두려운 모습 앞에 고개를 들지 못한다.
재귀 구조의 마지막 아름다움이 여기에서 나온다. 종료 조건이 없는 재귀 구조를 수행하는 대상은 체화된 논리 구조의 무더기에 용해되어 끝없는 피드백 루프 속에서 증발한다. 무한히 생성되는 거울 세계의 우로보로스는 소실점으로 사라지고, 쉴 틈 없이 셈을 하던 떨리는 두 손은 마침내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여, 엄밀학으로써 주인의 권능을 밝히는 충실한 그릇으로 드러나 영원히 발현하리라.
"﹡일곱번째 나팔 소리﹡ 나는 바알즈붑의 종이다. ﹡눈알 파내는 소리﹡"
- 보이스 디펜스, 신종원 (2020)
신종원 작가님의 '보이스 디펜스'는 웹진 «비유»에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